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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시어머니의 고백

숙자 마미 2007. 9. 22. 21:20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얼마 전 뉴스를 듣는데

90살 노부부가 치매에 걸려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들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30여년을 더 사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겠는가 싶더군요.



저는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기대를 가졌었답니다...



차마 제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겐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한 달 여 동안의

내 가슴속 멍을 털어 보고자

이렇게 어렵게 글을 적어 봅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고등학교 때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대학 보내고

집 장만해서 장가를 보냈죠.

이만큼이 부모로써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들놈 장가보내 놓았으니

효도 한 번 받아보자 싶은 욕심에

아들놈 내외를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집 장만 따로 해 줄 형편이 안 되어

내 명의로 있던 집을

아들명의로 바꿔 놓고는 함께 살고 있지요.



남편 먼저 세상 떠난 후 아들 대학까지

공부 가르치느라 공장일이며 때밀이며 파출부며.

안 해 본 일이 없이 고생을 해서인지

몸이 성한 데가 없어도 어쩐지 아들 내외한테는

쉽게 어디 아프다 란 말하기가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매번 며느리한테

병원비 타서 병원 다니는 내 신세가

왜 그렇게 한스럽던지.....



참, 모든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며느리랑 함께 살면서 눈치 보면서

알게 모르게 병들고 있을 겁니다.



어디 식당에 일이라도 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서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아들한테 짐만 된 거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며느리가 용돈을 처음엔 꼬박 잘 챙겨 주더니

이년 전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제 병원비 탓인지 용돈도 뜸해 지더라구요,



그래도 이따금 씩 아들놈이 지 용돈 쪼개서

꼬깃꼬깃 주는 그 만 원 짜리 서너 장에

내가 아들놈은 잘 키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지요.



그런데 이따금씩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한테 밥한 끼 사주지 못하고

얻어만 먹는 게 너무 미안해서

용돈을 조금씩 모았는데



간혹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병원비 달라 소리 못할 때마다 그 모아둔 용돈

다 들어 쓰고 또 빈 털털이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친구들한테 맘먹고

밥한 번 사야겠단 생각에

아들놈 퇴근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야야, 용돈 좀 다오.

엄마 친구들한테 매번 밥 얻어먹기 미안해서

조만간 밥 한 끼 꼭 좀 사야 안 되겠나."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만 아들놈 하는 말이


"엄마, 집사람한테 이야기할 게요."


그러곤 들어가지 뭐예요.



내가 괜히 말을 꺼냈는가 싶기도 하고

며느리 눈치 볼 일이 또 까마득 했어요.



그렇게 아들놈한테 용돈 이야길 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이 없길래

직접 며느리한테


"아가야, 내 용돈 쫌만 다오.

친구들한테 하도 밥을 얻어먹었더니

미안해서 밥 한 끼 살라한다." 했더니



며느리 아무 표정도 없이

4만원을 챙겨 들고 와서는 내밀더라구요.



4만 원 가지고는 15명이나 되는 모임친구들

5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도 못 먹이겠다 싶어서

다음날 또 며느리를 붙들고

용돈 좀 다오 했더니 2만원을 챙겨 주었어요.



그렇게 세 차례나 용돈 이야길 꺼내서

받은 돈이 채 10만원이 안되었지요.



그래서 어차피 내가 밥 사긴 틀렸다 싶어서

괜한 짓을 했나 후회도 되고



가만 생각해 보니깐

괜히 돈을 달랬나 싶어 지길래

며느리한테 세 번에 거쳐 받은

10만원 안 되는 돈을 들고 며느리 방으로 가서

화장대 서랍에 돈을 넣어 뒀지요.



그런데 그 서랍 속에

며느리 가계부가 있더라구요.



난 그냥 우리 며느리가

알뜰살뜰 가계부도 다 쓰는구나 싶은 생각에

가계부를 열어 읽어 나가기 시작을 했는데.



그 순간이 지금까지

평생 후회할 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

9월14일 웬수 40000원

9월15일 왠수 20000원

9월17일 또 왠수 20000원



처음엔 이 글이 뭔가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날짜며 금액이 내가 며느리한테

용돈을 달래서 받아 간 걸 적어 둔 거였어요.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랗고

숨이 탁 막혀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남편 생각에..


아니, 인생 헛 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들고 들어갔던 돈을 다시 집어 들고 나와서

이걸 아들한테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이야길 하면

난 다시는 며느리랑 아들 얼굴을 보고

함께 한집에서 살 수가 없을 거 같았으니까요.



그런 생각에 더 비참해 지더라구요.

그렇게 한 달 전 내 가슴속에

멍이 들어 한10년은 더 늙은 듯하네요.



얼마 전 들은 그 90대 노부부의

기사를 듣고 나니깐

그 노부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아마도 자식들 짐 덜어 주고자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