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결에 나무 잎은 물들고
소슬바람 부채질에
알곡은 여물어 가네만
허망하게 지워진 그림자 하나
무더운 여름철을 그 어데에
머언 발치에 세워놓고 허둥 허둥
이만치서 손짓하며 세월은 가는데
높은 하늘엔 잘차려 입은 손님
오락가락 구룸 잡으려 날고
메뚜기 이마 벗기려는 햇님은
우리집 샛님 큰기침만 늘여
꼴방대 두두리는 소리엔
문턱만 찧누나
들력에 익어가는 벼이삭은
언제 따려뉘 앞마당 멍석엔
빨간고추 꽃보다 아름답고
아기들쳐 업고 머리엔 밥광우리
온종일을 동동거려도 쉴짬 없어라
새악씨의 가을 낫은
한뻠만으로 줄어들고
성큼 닥아선 한가위 한숨만 나네
눈치없는 시어른 쳇머리 흔들며
었찌 이리 세월이 긴고 한탄이라
서울간 막내 아들 보기만 목빼고
빈 공간 헛기침으로 채우누나
논뚝에 늘어선 치마 자락 적시던 콩꼭지
아침 길을 걸을때 발목을 쓸어
헐게 하던 바랭이 풀
심술굳은 장난기로 서로 엮여
넘어 뜨리고 돌아선 뒤안길
간대 몰라라
고도로 발전한 현세대에
고향 언덕에 내가 서서 그때를 그리워 하는 구나
어라 얼렁 망태 걸메메고 산에올라서
쓰고 떨고 달은 머루다래
배부르게 먹어나 볼까
2007년 9월16일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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